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마 브래들리 (문단 편집) == 생애 == 1915년 [[미국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제임스 밴 플리트]], 조지프 맥너리 등이 있다. 이 기수는 훗날 2차대전에서 맹활약하는 장성이 무더기로 배출된 기수라서 [[별들의 기수]](The class the stars fell on)로 불린다. 그 중에는 [[원수(계급)|원수]]가 둘(브래들리, 아이젠하워), [[대장(계급)|대장]]이 둘(밴플리트, 맥너리)이나 되며 해당 기수 졸업생 164명 중 ⅓ 이 넘는 59명이 장군으로 진급했다. 게다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대통령]]도 나왔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얼굴만 온화한 장성]]과는 달리 브래들리는 [[대인배|인상 그대로의 성격]]. [[조지 S. 패튼]]과는 사관학교 선후배지간이었는데, 패튼이 하도 사고뭉치로 굴다보니 참모업무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타군과의 연대에 유연하게 대처한 브래들리는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내 패튼을 앞질러 먼저 진급해버렸다. ||<:> [[파일:external/www.dday-overlord.com/general_omar_bradley.jpg|align=center|width=100%]] || || 1944년 12집단군 사령관 시절 브래들리. || 조용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복장으로 인해 "졸병 장군(G.I. General)"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온화한 인품으로 부하들의 신망도 굉장히 높아서 브래들리 장군 밑에 있다가 다른 사람한테 가면 군생활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 그래서인지 화려한 것을 선호하고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패튼을 싫어했고 성격도 끝내주게 안 맞았다. [[횃불 작전]]에서 미군의 공세가 성공하자 부관에게 '''"이제 [[버나드 로 몽고메리|몬티]]에게 우리 군대를 파견해주겠다고 말해볼까?"'''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몽고메리 원수도 싫어했다. 사실 몽고메리는 특유의 까칠한 성품 때문에 대부분의 미군 장성들이 다 싫어했다. 이런 몽고메리를 잘 구스르고 달랜 아이젠하워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온화한 성격과 신망을 이용해서 몽고메리와 패튼 두 사람이 허구헌 날 싸우면 두 사람 사이에서 중재하고 아이젠하워의 명령을 따르게 한 사람 역시 브래들리였다. 그러나 이런 브래들리도 화를 낼 때가 있었으니, 벌지 대전투 당시 아이젠하워가 상의도 없이 브래들리 휘하병력 지휘권을 패튼에게 넘겨주면서 브래들리는 졸지에 휘하병력 없는 사령관이 되어버렸다. 이에 빡돈 브래들리는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크게 화를 내며 아이젠하워에게 항의했고, 아이젠하워도 브래들리 반응에 당황하면서 브래들리에게 사과하고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neral_Montgomery_with_Generals_Patton_(left)_and_Bradley_(centre)_at_21st_Army_Group_HQ,_Normandy,_7_July_1944._B6551.jpg|width=100%]]|| || 왼쪽부터 [[조지 S. 패튼|패튼]], [[브래들리]], [[버나드 로 몽고메리|몽고메리]]. || 이렇게 셋 다 웃고 있지만 실제로 마음속에서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오죽하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연합군 사령부에서 계속 벌어졌다. 이러고도 연합군 사령부가 멀쩡하게 돌아간게 신기한 일. ||1. 아이젠하워 원수가 연합군 지휘관들을 소집한다. 2. 전략을 토의한다. 3. 패튼과 몽고메리가 서로 내가 옳네 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4. 곧 두 사람끼리 언성을 높이면서 말싸움을 벌이고, 나머지 지휘관들은 [[버로우]]. 5. 회의가 끝난 후 아이젠하워 원수가 [[뒷목잡기|뒷목을 부여잡는다]]. 6. 브래들리 장군이 패튼 장군과 몽고메리 원수를 달래러 간다. 1. 다시 아이젠하워 원수가 연합군 지휘관들을 소집... '''[[무한 루프|이하 반복]].'''|| [[아르덴 대공세]] 당시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 당시 독일의 [[오토 스코르체니]] [[SS]]대령의 특수부대가 미군으로 위장해 교란작전을 벌이는 것이 발각되자, 미군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검문을 하면서 [[미국인]]만 알법한 질문, 예를 들자면 "[[미키 마우스]]의 [[미니 마우스|여자친구]]는 누구냐?", "[[시카고 컵스|시카고에 있는 야구팀은]] [[내셔널 리그|어느 리그]] 소속이냐"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브래들리는 전선 이동 중에 [[미합중국 육군/군사경찰|헌병]]의 검문에 걸렸는데 일리노이의 주도가 어디냐는 헌병의 질문에 브래들리는 자기 살던 미주리 근처라서 그런지 [[스프링필드]]라고 정확히 대답했다. 문제는 미국에서도 [[시카고]]의 유명세 때문에 '일리노이의 주도는 시카고'라고 알려져 있었다.[* 외국인들이 [[호주]]의 수도를 [[캔버라]]가 아니라 가장 유명한 [[시드니]]라고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미국의 웬만한 주들도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가 유명하지만 주도는 새크라멘토), [[네바다]](라스베이거스가 유명하지만 주도는 카슨 시티), [[플로리다]](마이애미, 올랜도가 유명하지만 주도는 탤러해시), [[알래스카]](앵커리지가 유명하지만 주도는 주노), [[펜실베이니아]](필라델피아가 유명하지만 주도는 해리스버그), [[뉴욕]](뉴욕 시가 가장 유명하지만 주도는 올버니) 등이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고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처럼 예외는 있다.] 결국 이 무식한 헌병은 '''"아니야! 이 멍청아! 정답은 [[시카고]]야!" 라면서 브래들리를 즉시 체포했다.''' 브래들리 말고도 상식이 부족한 병사들끼리 서로서로 많이 체포되어서 애를 먹었다고도 한다. 실제로 위의 시카고 컵스 문제를 못맞춰서 잡혀온 장군도 있었다고.[* 출처 오마 브레들리 자서전 A Soldier's Story 중에서 발췌.] 다만 헌병이 브래들리를 알면서 체포했을 확률도 적지 않다. 이어진 질문 중 세 번째 '베티 그레이블의 남편 이름을 말하라'에 그가 대답하지 못했음에도 헌병들은 그를 웃으면서 풀어줬기 때문이다. 헌병들이 브래들리를 고의로 체포한 이유는 전시에 하늘같은 장성을 합법적으로 골탕먹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브래들리는 물론 이를 그냥 넘어가 주었다. 반면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몽고메리는 운전병에게 미국놈들의 바보짓은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지시했다가, 열받은 미군 헌병들이 타이어를 사격해 터뜨리고 그를 끌어내려 몇 시간 동안 구금한 흑역사가 있다. 몽고메리는 네놈들을 모두 군법회의에 세우겠다고 펄펄 날뛰었지만 아이젠하워는 슈코르체니가 최고의 선물을 줬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몽고메리가 아무리 원수인들 그에겐 동맹군 장병을 징계할 인사권은 없었다.[* 출처 오토 슈코르체니 자서전(출판사 길찾기) 편집부 주석] ||[[파일:external/owlworks.files.wordpress.com/omar-bradley-on-normandie-beach.jpg|width=100%]]|| || [[노르망디]] 해안을 찾은 말년의 브래들리. 원수 진급 후 사망할 때까지 현역 육군 장교 신분을 유지했기에 개정과 함께 지급된, [[군복/미군|현대화된 육군 정복]]에 원수 계급장을 단 모습에서 노장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 [[한국전쟁]] 당시 미 [[합참의장]]이었으며, 1950년 9월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원수(계급)|별 다섯 개]]를 달아주면서, 2016년 현재까지는 미 육군 역사상으로 다섯 번째이자 미군 역사상 [[원수(계급)|원수]]로 승진한 마지막 장군이 되었다. 이유는 당연 2차 세계대전의 전과이지만 종전 후 5년이 지나서 진급하게 된 사유는 평시에는 맥아더를 제외한 다른 원수들은 종전 후 군문에서 잠시 나와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 중이었기 때문에 원수를 터치할 문제가 없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전시상황이 벌어지자 제복군인의 최선임인 합참의장이 이미 현역 육군 원수인 한국전쟁 총지휘관 맥아더보다 계급이 낮아 통제가 어려워진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또한 2차대전 종전 당시 육군과 해군에서 각각 4명이 원수로 진급했는데,[* 이 문제로 인해 [[레이먼드 스프루언스]]가 원수로 진급하지 못했다.] 육군 원수로 임명된 헨리 아놀드가 1947년도에 새로 창설된 공군으로 군적을 옮기게 되어 명분도 섰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MacArthur_Truman_Wake_Island.jpg|width=100%]]|| ||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무공 훈장에 네 번째 백엽 장식을 서훈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 맨 오른편이 브래들리 원수.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 섬.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